2023년 5월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 전국 902개 시민사회단체가 속한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정부가 또다시 ‘성평등 정책’을 만들기 위한 심의·기구인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의 비상설화 추진에 나섰다. 현행법상 ‘반드시 설치’하도록 한 위원회를 ‘필요한 경우 구성·운영할 수 있다’로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여성가족부는 2022년에도 같은 법 개정을 시도했다 ‘성평등 주무부처가 오히려 이를 후퇴시키는 데 앞장선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1일 법제처 누리집을 보면, 여가부는 지난달 6일 성별영향평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이하 중앙위) 설치를 의무로 둔 제13조1항을 ‘여가부 장관이 필요한 경우 구성할 수 있다’로 변경하고 ‘구성 목적을 달성했다고 인정하는 경우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을 새로 담았다.

현행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계획·사업 등이 성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성차별을 발생시키는 원인 등을 평가·분석해 성평등 실현을 이루고 성별 특성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성별영향평가를 하도록 돼 있다. 중앙위는 이런 제도의 운영 및 정부 정책에 대한 개선 권고 등을 심의·조정한다.

여가부는 법 개정 추진에 대해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함”이라며 “운영 방식만 달라질 뿐 위원회 기능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앙위를 사실상 위축시키는 조처로, 성별영향평가 제도 기능과 안정성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는 지난해 펴낸 보고서 ‘중앙성별영향평가위 비상설기구 전환의 쟁점과 과제’에서 “중앙위가 비상설화되면 위원회를 구성할 때마다 전문위원을 새로 뽑아야 하는데, 성별영향평가 과제 심의·평가·개선권고 등 과정이 수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제도 특성상 운영의 연속성·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성별영향평가 제도 취지와 방향을 면밀히 검토해 중앙위원회 운영 방침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법상 중앙위 위원장은 여가부 차관이며, 여가부를 비롯한 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국무조정실·법제처 소속 성별영향평가책임관 6명 등이 위원을 맡는다. 그러나 중앙위가 비상설 기구로 전환돼 힘이 더 빠지면 부처 간 조정 역할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경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여가부의 법 개정 추진에 대해 “중앙위 기능 중 하나가 부처 간 ‘업무 칸막이’ 해소 등 새로운 행정운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는데 이런 걸 정면으로 걷어차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성별영향평가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장관 결정에 따라 중앙위를 해산할 수 있는 조항까지 만들어두면 성평등 정책에 큰 관심이 없는 지자체들의 경우 (지방성별영향평가 운영 등을 규정한) 성별영향평가조례를 폐기하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가부는 오는 16일까지 성별영향평가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받은 뒤 입법 절차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