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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임신중지에 대한 ‘살인죄’ 수사 의뢰한 보건복지부, 책임 전가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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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WWF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24-10-0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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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임신중지에 대한 ‘살인죄’ 수사 의뢰한 보건복지부, 책임 전가 규탄한다

 

보건복지부는 즉시 수사 의뢰를 철회하고, 명확한 보건의료 지침과 포괄적인 상담 및 지원 체계를 구축하라!

지난 9월 27일, 한 여성이 임신 36주 차에 임신중지를 선택한 경험을 브이로그로 공유한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살인죄'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 후 5년이 지났고, 형법에서 낙태죄가 비범죄화된 지도 4년이 되어가지만,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체계 마련에 거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심각한 책임 회피이자 면피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보건복지부의 이번 수사 의뢰를 강력히 규탄하며, 법적 타당성도 부족한 ‘살인죄’ 적용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처벌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많은 언론이 임신 36주 차의 임신중지 사례를 예외적인 사건으로 다루며, 이를 임신중지 비범죄화나 법적 처벌 부재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후기 임신중지는 낙태죄가 유효할 당시에도 발생하였으며, 이는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문제다. 처벌로는 임신중지를 줄일 수 없으며, 임신중지 결정을 내리는 여성들의 현실적인 여건과 사회경제적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여러 국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임신중지 처벌은 비용 상승, 의료 음성화, 의료인의 책임 회피, 위험한 임신중지 환경 조성, 임신중지 시기 지연 등을 초래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이유로 WHO는 2022년 각국에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권고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사건을 빌미로 다시 처벌 규정을 강화하려 한다면, 이는 더욱 위험한 의료 환경을 조성하고 국제적인 건강권, 인권 증진 노력에 역행하는 조치가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책임 방기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우리는 줄곧 보건복지부에 보건의료 체계와 상담, 연계 지원 체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해 왔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안전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재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의료기관에서의 거부나 지나친 의료비 청구, 사회경제적 상황, 파트너나 가족의 개입 등 다양한 요인들은 임신중지 결정을 지연시키는 주된 요인들이다. 또한, 임신 사실을 늦게 인지하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 변화로 인해 후기에 임신중지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처벌이 아니라, 임신중지의 어느 단계에서든지 여성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고, 안전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체계 구축을 방기해 왔다. 건강보험 적용을 하지 않음으로써 의료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유산유도제는 여전히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보건복지부가 ‘살인죄’ 수사를 의뢰한 것은 자기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수사와 처벌이 아닌, 명확한 보건의료 체계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살인죄’ 여부가 아니라, 현실에서 여전히 이러한 상황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수사나 처벌이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보건의료 지침과 상담 시스템, 지원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모든 보건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필요한 경우 즉각적인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보험 보장 확대와 유산유도제 도입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궁극적으로, 누구나 안전하게 임신중지 또는 출산과 양육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 국회는 낡은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넘어, 국가의 책임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생명권은 단지 출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후 사회 속에서 안전하고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는 ‘낙태죄’ 폐지를 통해 이러한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확인해왔고, 앞으로도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즉각 수사 의뢰를 철회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출처 : https://amnesty.or.kr/12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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